사피윳딘입니다.
최근 인터넷의 지인이 상을 당하셔서 퇴근 후에 부랴부랴 가보려고 준비를 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나, 그 분 이름 모른다..... ㅜㅜ"
그러고보니 제가 그분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인터넷에 그 분 홈피에 올라온 글들로만 그 분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아버렸습니다.
.... 더불어 또 한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었으니.....
".... 그 분 연락처도 모른다..... ㅜㅜ"
.... 언제나 항상 닉으로만 그분을 대했고, 그 분과는 인터넷 상에서만 뵈었으니 현실에서의 연락처 역시 전혀 알지 못합니다. 물론, 가끔 정모 같은 것을 여셨지만 공교롭게도 그 분 정모 때는 시간이 맞지 않아 나가보지를 못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저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아 버린 것이죠.
.... 글쎄요. 저는 굳이 온라인에서의 인연과 오프라인에서의 인연을 구분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실제로 오프라인의 지인들에게도 역시 이 블로그를 공개하고 있고, 가끔 만나면 제 블로그의 내용이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걸 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프라인의 지인들의 이야기를 적을 때는 내용을 쓸 때 조금 신중하게 쓰는 편이죠. 제가 이곳에서 오프라인에 있는 지인들의 흉을 거의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 때문입니다.
.... 온라인의 지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온라인의 지인과 의견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발생한다 해도 저는 그 분과의 인연을 끊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저와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고 해도 그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닌데다 겨우 단 하나의 의견 차이만으로 그 사람과의 인연을 끊어버릴 정도로 단호한 성격도 못 됩니다. 얼굴을 모른다? 이름을 모른다? 연락처도 모른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죠.
뭐, 제가 워낙 머리가 안 좋아서 닉 듣고 금방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긴 합니다만, 한번 제가 머릿속에 확실히 기억한 닉이라면 그 닉 = 그 분으로 완벽하게 체크를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혹시 그 분이 닉을 바꾸었을 경우에는 "제가 어떻게 불러드렸으면 좋겠나요?" 라고 여쭤보는 편이죠.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 닉으로 부르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정도로 닉을 완벽하게 외웠다면 그 때부터는 오프라인의 지인들과 마찬가지로 대하는 편이죠.
그렇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는 닉이나 본명이나 그렇게 별 차이를 못 느끼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온라인에서의 지인을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나서도 항상 닉으로만 불러왔기 때문에 전혀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고요. 그런데 막상 이번처럼 온라인에서의 지인에게 일이 생겼을 때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달려가려고 생각했다가 제가 그 분의 본명부터 시작해서 전화번호나 다른 어떤 연락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니 뭔가 갑자기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되더군요.
..... 장례식장에 가도 그 분 본명을 모르는 이상, 어떻게 조문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뭔가 더더욱 애매해지더군요. 비록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온라인에서는 분명히 친분이 존재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렇다고 장례식장에 그 분 닉이 붙어있을리도 없고 말이죠.
..... 예전 PC 통신 시대야.... 본명 뒤에 아이디가 붙어 있었으니 이런 딜레마는 없었는데.... 요즘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닉만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런데서 문제가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생각보다 "본명" 이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고 할까요....
..... 그러다보니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역시 약간은 다른 건가... 하는 생각은 새삼스레 해보게 되네요. 뭐, 그렇다고 해서 "온라인의 관계는 모두 허상이야!!" 같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 어찌되었건 컴퓨터 앞에서는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점을 새삼스레 느끼고 있습니다. 그냥 여기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글 밖에 쓸 수 없다는 점도 뭔가 답답하기도 하네요.
..... 확실히 "닉" 은 오프라인에서 그렇게 힘이 없는 것 같습니다.....
(11월 2일 오후 6시 55분 추가)
이오공감에 오르고 나서 오늘 매장에서 다시 그 분의 홈피에 들어가보니 그 분의 홈피에 친절하게도 장례식장의 위치와 호수까지 적혀져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나니 뭔가 뒤통수에 망치를 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제는 그냥 그 분이 상을 당했다는 소리에만 집중했던 나머지 홈피를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던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죠. 아니, 실수라고 하기도 뭐한 것이 빨간 글씨로 잘 보이게 적혀 있었거든요.
결국 간단히 말씀드리면 어디까지나 "제 의지 부족" 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분과는 일면식이 없고 본명도 그 분에 대한 정보도 모른다....는 사실은 결국 핑계에 불과할 뿐이죠. sputnik님의 말씀대로 온라인에서의 지인이라도 알려고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음에도 저는 지레 포기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분명히 "닉" 과 "본명" 사이의 딜레마는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실제적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상의 이름과 오프라인 상의 이름 중 어느 쪽을 불러야 하는 작은 망설임부터 시작해서 온라인에서의 이미지와 오프라인에서의 이미지 사이의 갭을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그런 딜레마에서 오는 것일 가능성이 높죠.
.... 하지만, 딜레마는 "극복할 수 없는 것" 이 아닙니다. "의지" 와 "용기" 가 있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죠. 이번 일 같은 경우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제가 조금 더 용기가 있었다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지인이라는 조그만 두려움을 버릴 수 있었다면 이런 글을 올릴 시간에 바로 다녀왔을 것입니다.
적어도 "온라인" 이든 "오프라인" 이든 사람이 존재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라는 점은 똑같으니까요. 그리고 그 두 사회를 이을 수 있는 건 결국 "개인의 의지" 에 달려 있는 것이라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니까요.
.... 확실히 저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자그마한 용기도 내지 못한 제 자신이 상당히 부끄럽습니다.
.... 그래서 일단, 이오공감을 취소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만.... 그러면 결국 또 다시 도망가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포스팅 뒤쪽에 이렇게 추가의 글을 달아 봅니다.
.... 제가 하나의 좋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온라인" 과 "오프라인" 의 괴리에 지지 않는 "용기" 가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임하기를 그저 빌 뿐입니다.
# by 사피윳딘 | 2005/11/01 22:01 |
내 넋두리를 들어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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