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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과 冥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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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윳딘의 아랍 인물 이야기 - 관대한 군주 살라훗딘(살라딘)

사피윳딘입니다.

요즘 아랍 이야기를 안 적었더니 제 블로그의 정체성이 많이 흔들렸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일에 바빠서 예전처럼 책도 잘 못 읽고 그러는지라.... 예전처럼 글을 적기가 좀 애매모호합니다.

현 아랍 상황도 나름대로는 뉴스를 읽어보고는 있지만, 일부러 찾아볼 수 있는 텀도 없어서 다른 분들이 올려주시는 뉴스나 글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밖에는 없고요.

그래서, 그냥 한번 아랍 지역 인물 이야기나 적어보려고 합니다. 사실 아랍 지역 인물들 중에 개인적으로 꽤 관심 있는 인물들(특히 십자군 시대)이 많은지라 그 사람들 중심으로 이야기를 적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첫번째 타자는 예전에 사피윳딘의 시리아 문화유산 이야기 - 우마위야 사원에서 잠시 소개드린 적 있는 살라훗딘(살라딘)에 대해서 가볍게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살라훗딘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를 통해 워낙에 잘 알려져 있는데다 십자군 전쟁 중반부에 사자왕 리처드와 함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해서 여러가지로 꽤 인기 있는 인물이기도 하죠.

살라훗딘은 쿠르드 족 출신으로 아버지인 아이유브, 숙부인 시르쿠와 함께 모술의 군벌이었던 장기에게 투신, 주로 숙부 밑에서 전투에 참가해 장기가 시리아에 진출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장기가 다마스커스 공략의 발판이 될 수 있었던 자으바르 성채 공략전에서 암살당하자 그의 아들인 누르앗딘 휘하에서 부친과 숙부와 함께 활동하게 됩니다. 이 때 누르앗딘은 시리아를 완전히 평정하게 되죠.

살라훗딘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때는 이집트로 원정을 떠나 십자군을 물리치고 카이로에 입성했을 때부터인데요. 이 때 숙부인 시르쿠가 사망하면서 숙부 대신 이집트의 와지르가 됩니다.

이후 당시 이집트를 다스리던 시아파 왕조인 파티마 왕조를 멸망시키고 명실공히 이집트의 지배자가 되죠. 이 때부터 시리아에 있던 상관인 누르앗딘과 대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누르앗딘 역시 병으로 사망하자 그 아들인 알 살라흐와 대립하다가 알 살라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시리아까지 세력권에 넣게 됩니다. 이로써 명실공히 아이유브 왕조가 자리를 잡게 되죠.

그 후, 예루살렘 왕국과는 우호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만, 예루살렘 왕국에 기 왕으로 대표되는 강경파 정권이 생기면서 평화는 깨집니다. 결국 르노 드 샤티용이 협정을 어기고 메카로 향하던 대상을 공격하면서 전쟁에 돌입합니다.

그리고 그 전쟁은 히틴 전투에서 기 왕이 포로로 잡히고, 르노 드 샤티용이 살해당하면서 전세는 완전히 아이유브 왕조 쪽으로 넘어갑니다. 결국 예루살렘은 1187년 살라훗딘의 수중에 떨어지고 살라훗딘은 성지 예루살렘의 해방자로서 칭송을 받게 되죠.

이 때 살라훗딘은 당시 예루살렘을 수비하고 있던 발리앙과 담판을 통해 예루살렘의 시민들이 무사히 재산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빠져나가 티레로 도망칠 수 있도록 승인합니다. 이에 발리앙은 예루살렘을 살라훗딘에게 넘겨주고 이 약속은 제대로 이행되어 많은 물자들과 사람들이 무사히 티레(현 레바논 위치)로 도망칩니다.

하지만, 살라훗딘의 이런 배려는 결국 티레를 반격의 거점으로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콘라드 드 몽페를 중심으로 아이유브 군에 대항하게 되죠. 그동안 서유럽에서는 선발대로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선발대를 이끌지만 도중에 익사), 후발대로 프랑스의 필립 2세(존엄왕 필립)와 영국의 리처드 1세(사자왕 리처드)가 주축이 된 3차 십자군이 결성되어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옵니다.

이 때 살라훗딘에게서 풀려난 기 왕은 3차 십자군과 연합해 아크레를 포위 공격하죠. 이에 살라훗딘은 아크레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후발대이자 본대인 필립 2세와 리처드 1세가 도착하면서 결국 아크레를 내주게 되죠.

리처드 1세는 아크레를 점령한 후 포로들을 모두 살해합니다. 이 때문에 역사는 두고두고 살라훗딘의 관대함과 리처드 1세의 잔인함을 비교하게 되죠. 하지만, 그 덕분에 리처드 1세는 살라훗딘처럼 무슬림 쪽의 후환을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리처드 1세는 무슬림 쪽 보다 동맹군인 십자군 쪽에 의해 궁지에 몰리게 되죠.

아크레 공략에 성공한 리처드 1세는 차기 예루살렘 왕으로 기를 옹립하려 합니다만, 필립 2세는 티레 방어전의 영웅 콘라드 드 몽페라를 내세워 결국 콘라드가 차기 왕으로 결정됩니다. 하지만 즉위 전에 콘라드는 의문의 암살을 당하게 되죠. 이에 리처드 1세는 콘라드 암살의 혐의를 받게 됩니다.

결국 차기 예루살렘 왕으로는 필립 2세와 리처드 1세의 조카인 앙리 2세가 즉위하게 됩니다만, 레오폴드 5세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군과 필립 2세가 이끄는 프랑스 군이 본국으로 돌아가버리는 바람에 결국 리처드 1세가 이끄는 영국 군 단독으로 아이유브 군과 맞서게 됩니다.

리처드 1세는 아루스프 숲 전투에서 살라훗딘의 기습을 막아내는 등, 나름대로 전과도 올립니다만,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인 아스칼론을 둘러싸고 아이유브 군과 1년간의 지루한 전투를 벌이게 되죠.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리처드 1세는 병에 걸리게 되고(부상을 당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살라훗딘은 의사와 과일, 눈을 보내 그의 쾌유를 도우려 합니다. 결국 살라훗딘과의 강화를 통해 리처드는 3년 동안의 휴전 협정을 맺고 유럽으로 돌아갑니다.

이 때 리처드는 살라훗딘에게 편지를 보내 "3년 후에 돌아와 반드시 예루살렘을 되찾겠다" 고 하고 살라훗딘은 "만약 신이 예루살렘을 잃게 하려 하신다면 기꺼이 당신에게 잃겠다" 라는 답장을 보내죠.

이후 리처드는 오스트리아에서 레오폴드 5세에게 잡혀 연금되고(아크레 공략전 당시 레오폴드 5세는 리처드 1세가 자신의 가문의 문장 기를 찢은 일로 리처드 1세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죠) 필립 1세는 리처드의 동생 존을 충동질해 영국의 왕위를 찬탈하게 하려 합니다만, 제후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이 당시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 유명한 이야기가 바로 로빈후드죠).

결국 리처드는 15만 마르크의 몸값을 신성 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에게 바치고서야 가까스로 풀려나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만, 이후 필립 2세와의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결국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죠.

한편 살라훗딘 역시 리처드 1세와의 약속대로 비무장 기독교 순례자들을 보호하며 나라를 안정시키려 합니다만... 결국 병에 걸려 1193년 3월 4일, 다마스커스에서 사망하게 되죠.

살라훗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우선, 성품이 검소하고 적에게 대해서도 관대했으며,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그런 성품 때문에 후환을 만들어 이후 아크레를 잃는 등, 실패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만... 그 아량에 있어서만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했었죠.

그에 대한 일화는 유럽에서도 상당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예를 들어 뭐, 위에 나온 예루살렘의 예나 리처드 1세와의 일화 말고도 적인 프랑크족 아이가 노예로 팔려갔다는 사연을 들은 살라훗딘은 사재를 털어 그 아이를 구해와 그의 어머니에게 돌려 보내주었다는 이야기 등, 살라훗딘의 아량에 대한 일화는 정말 끝이 없죠. 이에 유럽에서도 살라훗딘은 기사도의 모범으로서 적인 기독교인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됩니다.

거기에 모든 사재를 이렇게 타인을 위해 사용하다보니 정작 자신이 죽었을 때 남은 개인 재산은 자신의 장례를 치룰만큼도 남아있지 않아 결국 그의 가족들은 돈을 여기저기서 빌려 장례를 치뤄야만 했다고 하죠.

실제로 현재 다마스커스에 있는 그의 묘는 그의 명성에 비하면 그리 넓지도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정말 이 좁은 곳에 그 영웅이 묻혀 있는 건지 의아하기까지 하죠.

어쨌든, 살라훗딘은 여러가지로 매력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덧글

  • 셸먼 2012/05/18 13:02 # 답글

    엄청 피곤한 살라딘이 제발 좀 자고 하자고 부탁해도 인정사정없이 닥달해서 결제를 받아간 부하의 이야기도 있고...
  • 사피윳딘 2012/05/18 13:39 #

    저도 그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
  • 원더바 2012/05/18 15:58 # 답글

    그동안 서유럽에서는 선발대로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선발대를 이끌지만 도중에 익사)

    마침 십자군이야기 3권을 읽기 시작한 시점에...^^;; 잘 읽었습니다 :-)
  • 사피윳딘 2012/05/18 17:05 #

    네. 프리드리히 1세의 익사로 인해 필리프 2세와 리처드 1세의 주도권 싸움이 펼쳐지는 결과가 나게 되죠...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3차 십자군이 되는 계기가 됩니다...
  • 8비트소년 2012/05/18 18:53 # 삭제 답글

    다마스커스 출장때 살라딘 묘에서 그야말로 기를 받았는데 같이갔던 분은 임원 승진하셨고 저는 오래기다리던 아이를 보았지요. 저한테는 위인입니다.
  • 꼬야 2012/05/18 20:45 #

    여...영험하네요
  • 사피윳딘 2012/05/19 12:17 #

    8비트소년님 / 오오. 영험하군요....
    꼬야님 / 영험하십니다...
  • 유니콘 2012/05/21 18:16 # 답글

    머 저 살라딘왕과의 리처드와의 이야기가 모티브가 된 것이 직접 소설에도 등장하죠^^ 그게 바로 스캇의 The Talisman이라고 압니다^^
  • 사피윳딘 2012/05/24 08:22 #

    아... 그렇군요...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 열혈 2012/06/03 23:15 # 답글

    저런 관대함 때문에 이슬람보다 유럽에서 더 인기가 좋으신 살라딘 대왕... 이슬람에서는 너무 관대해서 우유부단하다고 까지 보기도 한다던데...
  • 사피윳딘 2012/06/07 08:34 #

    하지만 시리아에서는 여전히 인기가 좋더라고요... ^^
  • 꼬마왕라이언 2012/09/16 15:09 # 삭제 답글

    오.. 살라딘과 리처드 왕에 대한 얘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었는데,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술된 것은 처음 봅니다.

    이슬람 중세에 대해 관심이 있는데 추천해주실만한 책 있으신가요? ㅎㅎ
  • 사피윳딘 2012/09/16 15:57 #

    이슬람 중세에 대해 따로 나온 책은 저도 찾고 있는 중이에요... 다만 역사 관련한 책 중에서 나름대로 전체를 잘 설명해둔 책은 케임브리지 이슬람사 정도가 되겠네요... 나머지는 논문을 찾아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만.... 한국어로 된 쓸만한 논문이 아쉽게도 그리 많지 않아서 말이죠...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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