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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윳딘의 시리아 생존기 - 영어는 어려워요
사피윳딘입니다.

시리아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쓰는 시리아 생존기가 되겠군요. 사실 오자마자 요 며칠 동안은 집에서 그냥 꼼짝 않고 잠만 잤습니다.

... 그래서 이제야 피시방에 올 마음을 먹게 되었네요(훗훗).

오랜만의 시리아 인터넷은.... 여전히 느립니다.... ㅜㅜ

자, 어쨌든 느린 건 느린 거고 일단 또 하나 가볍게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뭐, 사실 여기 시리아에 와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당연하게도 아랍어입니다. 일단 배우는 것도 당연히 아랍어고, 사람들 만나서 쓰는 말도 당연히 아랍어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아랍어를 쏼라쏼라하고 잘 하는 건 아닙니다. 사실 지난 1년 동안 공부에 집중하지를 않았던지라(초반에는 회사를 다녔고 겨울에는 아파서 골골거렸죠) 사실 그리 잘한다고 하기는 힘들죠. 그래도 현지 생활이라는 것이 꽤나 훌륭한 경험인지라 대화에서 대충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구나 정도는 알아채고 제 의사를 표현하는데도 그리 큰 문제점은 없습니다. 대충 말해도 다들 알아듣기는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영어입니다.

아니, 아랍어 쓰는 아랍 국가에 가서 왜 엉뚱하게도 영어냐고요?

.... 물론 평범한 시리아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아랍어를 씁니다만.... 사실 아랍어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 무엇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 상황에서 상대가 좀 배운 사람(!!!!!)틱 하다면 영어로 설명하는 것이 도리어 편할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다마스커스 대학에서 공부하는 경우,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유럽이나 미국, 호주인들이 많고 이들은 왠만하면(!!!) 영어로 대화합니다. 물론 유럽 친구들이야 자신들끼리 있을 때는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합니다만.... 다른 국가 친구들하고 이야기할 때는 대부분 영어로 이야기하죠. 다들 아랍어보다는 영어들이 편한 친구들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긴 합니다만....

하지만.... 하지만....

.... 저는 영어가 절대 편하지 않습니다.... (.........)

.... 그게 사실 다마스커스 대학 이외의 장소에서 영어를 써먹을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다마스커스 대학 같은 경우는 수업료가 다마스커스 3대 외국인을 위한 아랍어 교육기관(메제 학원, 아부 안누르 사원, 다마스커스 대학) 중에 가장 비쌉니다(월 32만원). 그러니 돈이 없을 때는 그나마 다른 교육기관을 알아보기도 하게 되죠.

.... 당연히 생활할 때는 아랍어. 먹고 쇼핑하고 길 물어보고 거래하고 등등 모든 일상생활은 당연히 아랍어로 하게 되다보니 좀 코 큰 사람들만 보면 자연스럽게 아랍어가 튀어나옵니다(그 사람 국적에 상관없이 말이죠). 뭐, 사실 아랍어 뿐이 아니라 지극히 아랍적인 제스처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게 되죠.

하지만 여기서의 문제. 아랍어 역시 그리 대단한 실력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기 위에서 적었듯이 좀 배운 사람의 경우는 영어 솜씨도 꽤나 괜찮습니다. 그런 사람 상대로 아랍어로 설명이 힘들어진다면.... 영어 쪽이 오히려 간편하죠.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 저는 영어가 절대 편하지 않은 사람인 것입니다..... (.........)

영어보다는 당연히 생활에서 주로 써먹는 싸구려 아랍어가 훨씬 편하죠. 사실 쇼핑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숫자랑 "얼마에요?" 만 알면 쇼핑은 다 하니까요. 사는 것? 그것도 어떻게든 됩니다.

.... 그런데 이 싸구려 아랍어에 익숙해지다보면 문제가..... 머리 속에 있는 다른 언어로 전환하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는 겁니다. 즉, 아랍어 쓰다가 영어 쓰려면 그 전환 시간이 꽤나 걸리게 되더군요. 거기에 기존에 알고 있던 그 언어의 단어까지 휘바휘바하고 날아가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제가 시리아에 도착한 후, 약 세 달이 지났을 무렵, 그러니까 2007년 6월 경이 되겠군요. 이 때 회사 일로 시리아의 용산인 민타까툴 바흐사에 모니터 구입 겸 시장 조사를 위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시리아에 도착한지 고작 세 달 밖에 되지 않았을 무렵. 당연히 아랍어도 익숙치 않았을 무렵이었습니다(지금은 그래도 감으로 때려 맞출 수 있는 정도는 됩니다만). 거기에 시리아 나름대로의 암미야(사투리)에도 당연히 익숙하지 않았을 무렵이었죠. 그러니 제 말이 당연히 잘 통했을 리가 없었죠.

사실 그 때 제가 했던 말이 대단한 말도 아니었습니다.

"이 모니터 얼마에요?", "컴퓨터 사양 좀 맞출 수 있을까요?" 정도?

... 그런데 제 발음이 워낙 최악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지라 현지인 상인분께서 제데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듣다 못한 상인분께서 한마디.

"당신 발음 너무 엉망이라 도저히 못 알아듣겠다. 당신 영어할 수 있나?"

... 뭐, 사실 제 발음이 너무 엉망인 거야 저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던지라 그리 불쾌하지는 않았습니다. 도리어 세 달 밖에 안 되었는데 유창하게 말을 하는 것이 더 이상한 거죠.

그래서.... 저는 깔끔하게 말했죠.

"네. 할 줄 압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거 얼마에요?" 가 영어로 어떻게 말하는 거였드라?

.... 아니, 정말로요.

.... 저 초등학생급의 영어가.....

....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뭐, 확실히 그 문장을 배운지 너무 오래 되서 기억나지 않.... 을리가 없잖아!!!

....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도는 그 말.

얼마에요? 얼마에요? 얼마에요? 얼마에요?

....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나 이래뵈도 학교 다닐 때는 공부 잘했다는 소리도 들은 적 있는데.....

얼마에요? 얼마에요? 얼마에요? 얼마에요?

.... 자자,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천천히 생각해보자. 일단 "얼마" 라는 단어부터 차근차근 떠올려야 해. 일단 의문문이니까 당연히 "What" 이 들어가겠지. 그 다음에는 "얼마" 라는 단어가 들어갈텐데.... 돈이니까.... 그렇다면....

"What money this computer?"

.... 뭔가 어색하고 거북한 느낌이 풍겨오는 걸로 봐서 이건 아닌갑다....

.... 그러니까 아랍어로 "캄(얼마나)" 이 영어로 도대체 뭐냔 말이다....

.... "How"? 그래. "What" 보다는 그럴 듯 하다!!

"How money this computer?"

.... 이것도 뭔가 많이 어색한데....

.... 아아, "money" 는 안 썼던 것 같은데.... 그렇지.... "money" 는 없었어.....

.... 그렇다면....

"How this computer?"


.... 이건 "이 컴퓨터 어때?" 라는 이야기 아닌가? 그런데 이것도 뭔가 틀린 것 같은 기분이....

.... 아!! Be 동사!! Be 동사를 안 썼다!!! 아랍어에는 Be 동사가 없다보니 헷갈렸나보다. 그래. 맞아. 그럼....

"How is this computer?"

.... 왜일까.... 뭔가 삼천포를 강렬히 건너가고 있는 느낌이 나는데..... (.........)

.... 이거 얼마인가 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말 아닌가?

.... 도대체 "얼마" 라는 뜻의 영어 단어가 뭐야!!!! (.........)

분명히 너무나 쉬운 단어인데....

분명히 너무나 쉬운 말인데....

분명히 자주 써왔던 말인데....

어째서 이놈의 단어가 생각이 안 나는 것이야!!!!

....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그래. 가격이라는 단어. 그게 뭐였드라?

그래!! "Price" !!

아아!! 나는 아직 안 죽었구나. 그렇지. 그렇지. 마음만 가다듬으면 금방 기억나잖아.

그러면 "얼마에요?" 는 바로!!

"How price is this computer?

.... 뭔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드는 건 왜일까?

.... 잠깐.... 이거 "How" 는 "어떻게" 라는 뜻이잖아.

.... 뭔가 어색해. 안 맞아....

다시 "What" 써볼까?

"What price is this computer?"

.... 맞는 것 같은데? 맞는 것 같은데? 이거 같은데....? 그런데 뭔가 상당히 복잡한 느낌인데?

.... 뭔가 간단한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뭔가 간단하고 쓰기 편한 말이....

.... 분명히 있었는데.... 분명히 있었는데....

.... 아아, 내 살아온 지난 날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 어머니. 죄송합니다. 소자. 이런 몸이 되어버렸습니다..... (...........).

물론 아시다시피 정답은 "How much is this computer?" 입니다만.... 저는 이 때는 이 말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아니, 떠올리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답을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컴퓨터는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 라고 말이죠.

네. 말 그대로 "How many" 하고 "How much" 하고 멋지게 헷갈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떠올린 것 중에 또 하나는...

"How amount is this computer?"

.... 도대체 저 amount는 왜 나온 거니....

.... 결국 저는 그 상인 분 앞에서 한마디도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다가 결국....

.... 조용히 도망나와버렸습니다.... (...................)

.... 아랍어는 발음이 엉망이라 못 써먹겠는데.... 영어까지 막혀버리니....

.... 정말 형언할 수 없는 좌절감에 휩싸여 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 결국 "How much?" 가 "얼마에요?" 라는 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2시간 뒤, 회사로 돌아오는 세르비스 안에서였습니다.

.... 뭐, 사실 제가 그만큼 아랍어에 익숙해져버려 모든 언어를 아랍어식으로 생각하다보니 나오게 된 일입니다만.... (사실 지금도 외국인이다 싶으면 바로 아랍어로 말을 겁니다) 그래도 저 초등학교 때 배우는 영어가 헷갈려서 이런 상황까지 와버린 부분에 있어서는 솔직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많이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고요.

.... 다시는 이렇게 헷갈리지 않도록 앞으로는 영어 공부도 잘 병행하면서 해볼 생각입니다만.... 사실 지금도 갑자기 영어 쓸 일이 생기면 이 때가 생각나면서 긴장이 되어버리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 하아. 역시 영어는 어려워요.... ㅜㅜ
by 사피윳딘 | 2008/06/29 21:51 | 사피윳딘의 시리아 생존기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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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Yasmine at 2008/06/29 22:04
음;;;;;;;;;;;;;;;;;;
아랍어과 입학해서 3년간 아랍어에만 매진한 나머지...스위스 국제학교 원서 집어넣을 때 직업란에 student를 적기 위해 5분간 고심하던 저였던지라...크흑~ 남 이야기가 아니에요. ㅠㅠ
진짜 아랍어는 마의 언어같아요. 한번 몰입하면 다른 언어 따위는 깔끔하게 머리 속에서 날려주는 센스~
Commented by 사피윳딘 at 2008/06/29 22:08
우우. Student!! 맞아요. 하여간 정말 아랍어는 마의 언어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ㅜㅜ
Commented by 여름공주 at 2008/06/30 00:01
.......... 예전에 영어 초급회화를 들어볼까 하고 첫 수업을 들어갔다가.......
물어보는 말이 뭐래는지 몰라서 '모른다'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I don't know'가 그렇게 생각이 안나고..... -_-;;
무심코 튀어나온 말은 'sirimasen(일본어)' ㄱ-;
뭐, 그런거죠..... 후우.. 영어는 참 친해지기 힘들어요...
Commented by 사피윳딘 at 2008/07/01 20:55
저도 학교 다닐 때 그랬던 적 있어요. 그 때는 또 외국인만 보면 자연스럽게 일본어가 튀어나오던 시절이었.... (.........)
... 그런데 왜 영어가 튀어나올 생각은 안하는지.... 정말.... 영어는 친해지기 어렵습니다.... ㅜㅜ
Commented by Frey at 2008/06/30 16:44
저도 지금 일본어를 보다가 영어로 말하려고 하면 사고 전환이 필요합니다 ㅠㅠ 한국어 - 영어, 한국어 - 일본어는 금방 되는데 영어 - 일본어는 잘 안되는 것 같아요 ㅠㅠ
Commented by 사피윳딘 at 2008/07/01 20:56
맞아요. 확실히 언어간 사고 전환이 빨리 안 되니 답답해지더라고요. 말씀하신대로 외국어 - 외국어 전환은 특히 더 그래요.... ㅜㅜ
Commented by xmamx at 2008/06/30 19:46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남같지 않은...
Commented by 사피윳딘 at 2008/07/01 20:57
후우. 너무 이런 경우가 많아서 말이지.... ㅜㅜ
Commented by 거대염소 at 2008/06/30 20:18
안녕하세요 사피윳딘님 블로그에 가끔 들리던 방문자입니다

저도 홍콩에 관광갔다가 얼마예요? 가 생각이 안나서
How many mony is it?
How amount of money is it?
같은 소리를 계속 하다가
What's the cost of this shirt?라고 말해서 겨우 의사소통이 됐던 기억이 나네요ㅠㅠ
(사실 이것도 말이 안되는 영어기는 하지만..)

옷을 사고 돌아서는 순간 생각나는 How much is it? ...ㅠㅠㅠㅠㅠㅠㅠ
Commented by 사피윳딘 at 2008/07/01 20:58
크흑. 동지시군요. ㅜㅜ 확실히 저도 돌아오는 순간 그 말이 떠올라서 "이제 떠오르면 뭐해!!" 하고 가슴 속으로 통곡을 했었죠... ㅜㅜ
Commented by 에제키엘 at 2008/07/01 11:55
스페인어, 영어 배우다 일본 애니메이션 보다보니 영어로 설명해야하는데 되지도 않는 스페인어나 일본어가 마구 머릿속에서 휘몰아치죠(...)
Commented by 사피윳딘 at 2008/07/01 20:59
저도 그래요... 아랍어랑 영어랑 한국어랑 일본어가 계속 머릿속에서 휘몰아치는 것이 가끔 느껴집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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